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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서 사랑하시는 하나님

20 중 9 일째

살리는 죽음 에스더는 바사 제국의 왕후였습니다. 당시 예법에 따르면 아무리 왕후라고 하더라도 왕의 명령이나 허락 없이 왕을 알현할 수는 없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자신의 동족이 몰살당하는 음모가 진행되는 것을 알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왕이 부를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죽기를 각오하고 규례를 어기면서 왕 앞에 나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일이었는지, 에스더는 먼저 동족들의 금식기도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금식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을 알현합니다. 그 결과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전세가 뒤바뀌었습니다. 역전승이 일어난 것입니다. 에스더 이야기에서 우리는 먼 훗날 일어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모형을 봅니다. 에스더가 죽기로 각오한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동족들을 위해서입니다. 만일 자신을 위해서였다면 그냥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아무도 자신이 유다인 포로출신이라는 걸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동족들이 모두 죽고 난 후에 누리는 자신의 편안함과 부귀영화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에스더는 타인을 위해 자신의 안전을 포기하고 목숨을 걸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희생한다는 것처럼 위대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비우시고 이 땅에 내려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자기 부정, 자기 비움이 십자가 사건의 본질입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을 살리고 자신도 살립니다. 에스더 이야기는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마음을 더욱 초라하게 만듭니다. 자신은 조금도 손해 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당하게 손해를 요구하는 우리들이 아닙니까. 다른 사람들의 희생 위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처세술이 득세하고 있지 않습니까. 형제의 큰 아픔과 고통에는 모른 척 눈감아버리면서, 자신의 조그만 이익을 위해서는 핏대를 세우면서 싸우지 않습니까. ‘너는 죽더라도 나는 살고 봐야 하겠다’는 것이 솔직한 우리 속내가 아닐까요. 하나님이 나를 높이 세우신 것은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남보다 더 많이 가지게 하신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주는 자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나누어 주면 다른 사람도 살리고 나도 삽니다. 그러나 움켜쥐면 다른 사람들은 배고파 죽고 나는 배불러 죽습니다. 내려놓으면 생명의 역사로 내게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에스더의 헌신과 믿음과 희생은 인생의 역전승이 어떻게 가능한지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살리는 죽음’의 역설적인 진리를 알려줍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오늘도 목숨을 걸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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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소개

고쳐서 사랑하시는 하나님

본 묵상은 한강중앙교회 담임목사님이신 유요한 목사님의 ‘목회서신’ 중에서 발췌했습니다. 본 묵상을 통해 변치않는 마음으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깨닫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자료를 제공해 주신 한강중앙교회 유요한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내용에 관해 더 알고 싶은 것이 있으시면 한강중앙교회 홈페이지 http://hangang.onmam.com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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