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와 그리스도

9일 중 1일 • 오늘의 읽기

묵상

반석으로 나오라


확률 게임은 희망을 걸 만큼 견고하지 못하다. 3퍼센트냐 10퍼센트냐, 젊으냐 늙었냐, 건강 상태가 좋으냐 나쁘냐, 시골에 사느냐 도시에 사느냐, 혼자 사느냐 친구들과 함께 사느냐 등을 따져 생존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은 믿을 만하지가 못하다. 확률 게임은 소망을 줄 수 없다. 그것은 딛고 설 만한 굳건한 토대가 못 된다. 


더 나은 길, 더 나은 토대가 있다. 가능성이라는 모래가 아닌 확실성이라는 반석이 존재한다.


암 진단을 받다


2005년 12월 21일, 나는 전립선암에 걸렸다는 진단 결과를 전해 들었다. 그때부터 몇 주 동안은 온통 생존 가능성에 관한 대화뿐이었다. 좀 더 기다리면서 상태를 지켜보는 것, 약물 치료를 받는 것, 동종요법을 사용하는 것, 외과 수술을 받는 것, 이들 각각의 생존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를 따지는 말들이 오갔다. 아내와 나는 그런 가능성의 수치를 비교하며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나 저녁이 되면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빙긋이 웃으면서 “우리의 소망은 가능성에 있지 않아.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어.”라고 생각했다. 


물론, 우리의 생각은 “의사들은 어느 정도의 가능성만을 보장해주지만 하나님은 100% 치유해주실 수 있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우리가 말하는 반석은 그 이상이다. 그렇다. 그것은 치유보다 더 나은 것이다. 


의사가 전화로 암 확진 결과를 알려주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놀라운 방법으로 나의 발을 받쳐주고 있는 반석을 상기시켜 주셨다. 일상적인 연례 정기 검진이 끝난 후에 비뇨기과 의사는 나를 쳐다보며 “조직 검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요? 언제요?”


“괜찮으시면 당장 해야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죠”


하나님이 말씀하시다


의사가 기계를 가지러 간 동안, 나는 잘 어울리지 않는 파란색 옷으로 갈아입으면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잠시 생각할 기회를 가졌다.


“아마도 의사는 내가 암에 걸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 보군.”


그런 생각을 하니 세상에서의 나의 미래가 달리 생각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하나님은 최근에 성경에서 읽은 말씀을 마음속에 떠올려 주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살전 5:9, 10).

“깨어 있든지 자든지”, 즉 살든지 죽든지 나는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나는 하나님이 제시하신 사랑과 거룩함의 기준을 단 하루도 예외 없이 날마다 어기며 살아온 죄인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 덕분이다. 예수님의 죽으심 때문에 나를 향한 진노가 모두 사라졌다. 내가 완전해서가 아니다. 나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와 죄책과 징벌을 담당하셨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한다. 나는 죄책과 징벌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비로운 호의(好意) 안에 안전하게 거한다. 하나님은 “살든지 죽든지 너는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암이든 코로나 바이러스든, 이것은 확률 게임과는 사뭇 다르다. 이것이 우리의 발을 받쳐주는 견고한 반석이다. 이것은 무너지지 않는다. 이것은 모래가 아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도 이 불안한 시기에 이 반석을 딛고 서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